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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최정례)
그는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 하나 데리고 살지요
그는 돈도 없고 처자도 없고 집도 없고 그는 늙었지요
바위 구멍 굴딱지 같은 곳에서 기어나와 한참을 앉아 있지요
서성거리지요
산벚꽂나무 기운없이 늘어진 걸 보니 봄이 왔지요
냄비를 부시다 말고
앓아 누운 여자 그림자를 안아다
양지쪽에 눕히고
햇빛을 깔고 햇빛을 덮어주고
종잇장같이 얇은 그녀도 하얗게 늙어가지요
산벚꽃나무 장님처녀 눈곱 달듯
한두 송이 꽃 매달지요
그녀의 이마가 그녀의 볼이 따뜻하지요
아니 차디차지요
이 봄은 믿을 수가 없지요
그녀를 눕혔던 자리 아지랭이 피어오르고
그녀가 천천히 날아가지요
산벚꽃나무 너무 늙어 겨우 꽃잎
두 장 매달았다 떨구지요
또 봄은 가지요
그녀는 세상에 없는 여자고
그래도 그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지요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이 시 읽으면 읽을수록 슬퍼집니다. 홀로 남아 떠나버린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는 저 사람, 언젠가 누구나 닥칠 시간입니다. 함께 있을 때, 더 사랑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어제 안양천에 다녀왔습니다.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이번 주가 최고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벚꽃은 너무 이쁜데, 너무 빨리 져버려서 안타깝습니다. 다음 주에 가서 봐야지.... 하면, 어느새 반쯤 저버린 모양새입니다. 아주 잠깐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꽃입니다. 미루지 말고 벚꽃구경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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