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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소망 없는 불행/페터 한트케/아이 이야기

건강한 하늘시내 2022. 12. 8. 15:56

책 제목이 (소망 없는 불행)이다. 페터 한트케라는 201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작가가 쓴 소설이다. 제목만 봐도 정말 어두운 이야기가 펼쳐지리라 생각된다. 남편도 책 제목이 좀 그렇네...라고 말했다. 불행이라는 단어도 힘든데 소망 없는 이라는 말까지 더해서 이중고가 느껴진다. 이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고 이 책에는 (아이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소망 없는 불행)에 (소망 있는 행복)처럼 여겨진다.

 

 

소망 없는 불행
소망 없는 불행

 

 

소망 없는 불행

 

51세 어머니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유서를 복사해 보내고,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죽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듣고 강하게 그녀에 대해 쓰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래서 (소망 없는 불행)이라는 소설은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이다.

 

가난, 전쟁, 무지한 전통이 있던 시대에 태어난 여자는 꿈이나 소망을 품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한가로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가난한 삶에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꿈꾸며 다르게 살기 바랐다. 그녀는 집을 나가 호텔에 취업을 하고 독일계 은행원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유부남이었으므로 결혼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여자로서 힘든 일이라고, 그래서 남자가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는 다른 독일 병사와 결혼했다.

 

결혼 전에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당신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는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며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그녀는 그가 미쳐서 그녀를 괴롭히는 동안 속으로 욕을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참고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어떤 소망도 없었다. 그녀는 어떤 것도 이룰 수가 없었다. 가난한 삶을 견디는 것 밖에 어떤 기쁨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존재했고 성장해 갔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p38

 

그 시절,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고 혼란했다. 특히 여자에게는 더 혹독했던 시절이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여자에게 기회는 거의 없었다. 우리 위 세대의 여자의 삶과 비슷한 것 같다. 교육의 기회도 없고, 자아를 실현할 아무것도 없다. 좀 여유로운 집에 태어났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생계의 위협을 받으며 사는 사람에게 자유나 소망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암울했던 시기를 지내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어찌 그런 세월의 한 순간이라도 편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 안 통하는 사내와 살면서 폭행을 견디며 그녀의 영혼은 서서히 죽어갔다.

 

잠시, 여유를 가지기도 했다. 비로소 시장을 오고 가다가 한 잔의 커피를 사서 마시는 것을 자신에게 허용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이젠 눈치를 보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의 인생에 큰 호사였다. 평생을 아껴야만 했던 그녀에게 돈을 주고 커피를 사 마시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병이 들었다. 정신과에 가서 한참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아마 병원놀이를 하는 듯했다. 점점 몸도 망가지고 정신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단을 내린 것 같다.

 

아들은 그녀가 자살한 소식을 듣고, 그녀 다운 죽음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나 보다.

 

그는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면서, 그녀를 애도하는 듯하다.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의 삶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봤다. 자식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그는 죽어서도 기분이 좋을 듯하다. 어느 모양으로나 그는 어머니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녀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말하자면 자식 키운 보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소망 없는 불행한 삶을 산 어머니를 추억하며, 그녀가 산 삶을 따라가며 쓴 소설이다. 그녀가 기회를 가져서 교육을 받고, 자아를 실현하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 시절에 대부분 여자는 그렇게 소망 없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아이 이야기

 

(아이 이야기)는 남자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쓴 이야기다.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가 여배우와 결혼하고 낳은 아이를 홀로 키운다. 그녀는 자기의 일을 우선시해서 그에게 아이를 남겨두고 떠난다. 남자가 여자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아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는 마치 다른 종족처럼 느껴졌다. 끊임없이 울고, 떼쓰고, 이기적이고, 어른을 괴롭히는 존재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을 하는 그는 그래도 여유가 있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아이는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아이는 자신의 요구를 있는 힘을 다해 표현한다. 아이는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와 있으면서, 때로 아이 때문에 글을 쓰는 일이 방해받기도 하다. 그는 대작을 쓰고 싶지만, 지금의 형편으로는 흐름이 자꾸 끊긴다. 그는 작은 글쓰기로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에게 가 있을 동안 깨닫는다. 아이가 있는 시간이 그에게 글을 쓰는 영감과 힘의 원천이었다는 것을.

 

 

 

아이가 커가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고, 남자를 때로는 밀어낸다. 심지어 아이는 아빠가 없어졌으면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런 말은 남자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이 전부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아이는 그에게 점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아이 이야기)에서 남자가 아이를 잘 키우는구나 생각했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부러웠던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는 좀 전의 성공으로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여느 남자처럼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아이를 관찰하고 여유 있게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이를 교육시키고, 좋은 대학을 보내고, 좋은 직업을 갖게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하고.... 이런 것이 내가 아이를 키우는 제일의 관점이었다. 

 

여기 이 소설의 남자는 아이의 장래에 대해 경제적 측면을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여유가 있으므로 아이는 자유롭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될 것이다. 

 

이 소설에는 아이를 관찰하며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주로 썼다.  아이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아이가 자신의 글 쓰는 일에도 방해라기보다 어떤 새로운 생각거리와  힘을 주는 존재가 된다. 전에 가졌던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아이의 존재 자체로 이미 충만한 삶이 되었다. 아이가 방학 때, 엄마에게로 갈 때면 얼마나 집이 텅 빈 느낌인지 알게 된다. 아이가 글 쓰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한 때 생각했지만, 아이가 없이 글 쓰는 일이란 정말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남자에게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를 읽고 페터 한트케에 대해 생각하다

 

 

(소망 없는 불행)은 어머니 이야기이고, (아이 이야기)는 자신의 딸에 관한 이야기이다. 페터 한트케는 대부분 자전적 이야기를 썼다.  그의 어머니가 소망 없는 부정적 이야기 라면, 그의 딸의 이야기는 소망 있는 긍정적 이야기인 셈이다.

 

부모의 삶을 바라보면 대부분 슬프고 아프다. 그들은 나름대로 삶을 열심히 살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실패한 인생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부모를 원망한다. 그들이 성공했으면 자식은 평안을 누릴 테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그저 그런 힘든 여정을 살았을 뿐이다.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힘들다.

 

자신의 아이를 낳고 키우며 새로운 소망을 갖는다. 나의 아이는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힘닿는 대로 아이를 교육시키고 뒷바라지를 한다. 나의 소망을 아이의 어깨에 얹어 놓는다. 자식은 꼭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페터 한트케의 (아이 이야기)를 보아도 아이는 소망 그 자체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부모와 자식은 이렇게 불행과 소망으로 다르다. 어쩔 수 없는 삶의 수레바퀴이다. 늙어가는 부모를 바라볼 때 우리는 슬프고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세월에 장사 없다. 하지만, 아이를 볼 때, 우리는 그 아이가 무조건 잘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아이에게 불행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행복하기만을 소망한다.

 

민음사에서 페터 한트케의 소설을 내면서 (소망 없는 불행)만을 넣었다면 나는 그를 굉장히 부정적인 작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 이야기)가 뒤편에 같이 있어서, 그를 좀 소망 있고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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