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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신원미상여자>는 1950년대 말, 1960년대 전쟁 후 어둡고 막막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 명의 이름도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불안한 현실과 미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랑스 소설 <신원미상여자> 줄거리
첫 번째 여자
그녀는 의상 모델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지만, 옆모습이 이쁘네요...라는 소리만 듣고 발탁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이번 기회를 놓치자 무척 실망한다. 그리고 무작정 파리로 간다. 거기서 '기 뱅상'이라는 가짜 이름을 가지고 사는 남자의 애인이 된다. 그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정작 그녀는 타인의 이름을 쓰고 있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어느 날, 그의 호텔에 찾아가니, 그의 친구 같은 사람들로부터 제지당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경찰이 와있다. 당신도 위험하니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한다. 그는 죽었을까? 아니면 경찰에 체포되었을까?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그곳을 나온다.
"빨리 여기를 떠나요. 그들은 아직 당신이 누구인지 몰라요. 현재로서는 그저 '신원을 알 수 없는' 금발의 젊은 아가씨일 뿐입니다."
두 번째 여자
그녀의 아빠는 그녀가 세 살 때 죽고, 엄마는 동네 푸줏간 남자와 재혼했다. 그래서 이모가 그녀를 키웠다. 아주 똑똑하다고 학교 교사는 그녀를 대학 시험을 치를 수 있는 학교에 보내라고 하지만, 이모는 수도원 소속 기숙학교로 보낸다. 그곳은 너무 규칙적이고, 매일 배가 고프고, 음울한 곳이다.
그녀는 어느 날 기숙사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그만둔다. 구직을 위해 애쓰다가 전직 무용수였던 부유한 여자와 개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해 온 일 중에 가장 편하고 돈도 후하게 주었다. 하지만, 그 무용수가 떠나고 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녀는 전혀 정을 주지 않는 엄마와 이모를 보면서 아빠가 지금까지 같이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아빠를 알고 있던 사람을 찾아가 아빠의 지난날을 듣고, 아빠의 유품을 받아온다. 거기엔 몇 권의 책과 아빠가 활동했을 당시 사용되었던 총과 총알도 함께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구직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지인이 돈 많은 사람의 베이비시터 일을 알려줬다. 그 지역으로 휴가차 왔던 부유한 젊은 부부의 아이를 돌보다가, 아이의 아빠가 자기 본가에서 며칠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제안한다. 그녀는 괜찮은 일거리라고 생각하고,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의 부인과 아이들은 없고, 대신 그와 그의 친구가 그녀를 맞이한다. 아이의 아빠는 그녀가 집에 들어오자 문을 잠근다. 그는 그의 친구와 진한 농담을 나눈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녀의 방에서 하겠다고 제안을 한다. 3층 방으로 안내하는데, 화려한 경대가 있다. 그녀는 화장실을 잠시 쓰겠다고 하고, 물을 틀어놓고 총알을 장전한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그의 가슴에 총알을 쏜다.
나는 사격에 아버지와 똑같은 재능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한 방에 그 남자를 죽였으니까.
세 번째 여자
열아홉 그녀는 런던에서 파리로 왔다. 지난가을 노팅힐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사람이 파리에 있는 아틀리에를 쓰라고 그녀에게 열쇠를 주었다. 그녀는 파리 어느 역 근처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당분간 살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다. 파리를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아는 사람도 없이 그녀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지역은 말 도살장이 있다. 그녀는 수만 마리의 말이 도살되었던 그곳을 지나가는 것이 싫어서 항상 우회해서 다니곤 한다. 피냄새가 진동하고, 피 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돈을 세는 모습....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 아침마다 말발굽소리는 그녀를 깨운다. 저녁마다 극장으로 가서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고, 근처 카페에 매일 들른다. 아무도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그녀 또한 이곳에서 이름 없는 여자인 셈이다.
어느 날, 카페에서 고등학교 철학교사를 하는 남자를 만난다. 그와 몇 마디 주고받는데 그녀가 일거리를 찾는다고 하니, 그는 타이프 치는 일거리를 알선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타자기를 빌려주고 타이프를 칠 내용물을 주는데, 그것은 그가 몰두해 있는 '자아의 부름'이라는 정신수 양하는 모임의 팸플릿이다. 그녀는 매일 타이프를 치면서 '자아의 부름'이라는 사상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모임에 초대한다.
"긴장을 푸세요..... 눈을 감으세요....."
마치 요가나 정신 수련원에 온 듯하다. 그녀는 그렇게 그들의 모임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자체를 안도한다.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어린 그녀들은 날마다 앞날의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지지해 주는 부모도 없고, 그럴듯한 졸업장도 없다. 그렇다고 뛰어난 외모나 재능도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개인들이다. 전쟁이 끝난 후, 암울한 시대와 맞물려 그들의 삶이 팍팍하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이고, 나아질 것 같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절망하며, 그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많은 신원미상들이 이 시대에도 살고 있다. 전후 프랑스 파리뿐 아니라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얼마나 많은 신원미상들이 있는가? 주민등록증의 이름만 있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직업을 갖기도 힘들고, 파악도 되지 않는 애인을 만들고, 흐릿한 앞날을 걱정하며 산다.
이 소설은 어떤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담담히 말하는 것 같다. 다른 많은 신원미상의 사람들이 어느 구석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막막한 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나만 못난이라고 주눅 들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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