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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은 뫼르소라는 한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하게 되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세 가지 죽음이 등장한다. 엄마의 죽음, 살인당한 아랍인, 살인으로 교수형을 당한 뫼르소. 정말 지금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의 이야기다.
이방인 줄거리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이것이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엄마가 죽은 것이 마치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인지, 아니면 아무 감정 없는 자연의 일부분인지 헷갈리게 하는 건조한 문장이다.
뫼르소는 알제리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평범한 남자다. 회사를 다니고 있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산다. 요양원에 있던 엄마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고 그는 엄마의 마지막을 마무리 짓는 듯이 양로원을 방문하여 장례를 치른다.
요양원을 방문해서 어머니의 시신도 보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고, 그저 무덤덤하게 밀크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장례식에 참석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주말이라 바닷가로 나간다. 거기서 애인 마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코미디 영화를 본다. 바로 전날 어머니가 죽어 장례를 치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일상을 보낸다.
그의 아파트에 래몽이라는 건달이 윗층에 사는데, 그에게 친구가 되자고 한다. 뫼르소는 그가 건달이건 아님 다른 직업을 가졌건 상관없다. 친구가 되자고 하는데, 딱히 안 할 이유가 없다. 래몽은 그의 정부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광분하며, 그녀를 혼내줄 계획을 세운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먼저 쓰린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자기는 글을 쓸 줄 모르니 도와 달라고 한다. 뫼르소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 편지를 대필해 준다.
그 후 래몽은 정부를 집에서 구타하는 사건을 벌인다. 여자는 매를 맞으며 소리 지르고 경찰이 달려오는 소동이 일어난다. 래몽은 정부를 혼내주어서 후련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부의 오빠들이 래몽에게 복수를 하려고 그를 뒤쫓고 있다.
날씨가 화창한 주말, 래몽은 바닷가 해변에 자기 친구가 사는데, 놀러 가자고 한다. 뫼르소는 마리와 함께 래몽의 친구 집으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래몽과 바닷가를 거닐게 된다. 한편으로 래몽을 뒤쫓던 래몽의 정부 아랍인 오빠들이 바닷가에 있다. 그들과 맞닥뜨린 뫼르소는 래몽이 흥분해서 총을 쏘게 될까 봐 자기가 래몽의 총을 가지고 있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과 싸움을 하다가 래몽이 칼에 찔려서 다치게 된다.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고, 붕대를 감고 래몽이 오는데, 뫼르소는 바닷가 작은 집이 답답해서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거기서 다시 래몽을 찌른 아랍인을 만나게 된다.
점점 그와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 아랍인은 칼을 꺼낸다. 강렬한 햇빛에 칼이 번쩍이며 눈을 시리게 하고, 땀이 떨어진다. 순간적으로 뫼르소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긴다. 한발, 그리고 연달아 네발.
이렇게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감옥에 갇힌 뫼르소는 모든 일이 귀찮기만 하다. 그를 만나러 온 변호사는 그리 큰 사건이 아니니 잘 해결될 것이라 말한다. 예심판사는 뫼르소에게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고, 뫼르소가 안 믿는다고 하니까 화를 낸다. 종교가 없는 뫼르소를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죄를 회개해야하는 죄인인데, 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재판당일,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날씨가 무더워 부채를 부치면서 재판이 진행되는데, 정작 뫼르소는 이 살인사건과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그저 그곳에 앉아있고, 저마다 뫼르소에 대해 판단한다.
사람들은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에서 보인 무심한 태도가 맘에 안 들어 그를 상식이 없는 비사회적 인간으로 규정한다. 엄마의 장례식에 슬픔을 보이지 않고, 마지막 모습도 보지 않고, 더군다나 담배를 피우고, 밀크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그는 이 세상에서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있다.
살인을 왜 했냐고 판사가 질문했을 때, 그는 뜨거운 태양 때문이라고 말한다. 단지....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뫼르소를 거부한다. 살인에 더 그럴듯한 피치 못할 사연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냥 그 당시의 우발적 행동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한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뫼르소가 그때 살인을 저지른 것을 변호하자면, 아마도 그는 래몽이라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서 인 것 같다. 그는 그리 오래 사귄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바닷가로 놀러 간 친구가 그 아랍인에 의해 다치고, 치료를 받고 온 것을 같이 겪었다. 그리고, 강렬한 태양이 쏟아지고, 땀은 나는데 더위를 식힐 장소를 찾다가 다시 그 아랍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먼저 칼을 꺼내 들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이성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너무 뜨거운 태양에 자신의 상태가 혼탁해졌을 수 있겠다.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을 다섯 발이나 쏘는 것은 어쨌든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다. 그런 중차대한 일을 그저 뜨거운 태양 탓을 하면서 말하는 그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 아랍인이 친구를 찔렀듯이 그도 칼에 찔릴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해 선재적으로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태양빛에 번뜩이는 칼날이 위협적이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방아쇠를 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재수 없게도 하필 그날 바닷가를 나갔고, 그 아랍인을 두 번 만나고 그는 친구의 총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것에는 일말에 변명의 여지없이 엄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재판과정은 그가 아랍인을 죽인 사건 보다 그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보여준 태도에 집중하는 듯하다. 그가 보통 사람들, 상식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보여주지 않아서 그를 정죄한다. 장례식 다음날,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살인죄를 논하는 법정에서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 배심원들, 방청객, 그를 아는 친구, 지인들.... 그들은 저마다 그에 대해 말하는데, 정작 그 본인은 제대로 말 한 번 못하고 판결이 난다. 비상식적인 그는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사실, 알제리는 당시 프랑스 치하에 있어서 웬만한 사건은 프랑스인이 유리한 판결을 받는다. 뫼르소는 프랑스인이었고, 그는 계획적인 잔혹 살인이 아니라, 나름 변명의 여지가 있는 우발적 살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적당히 상식에 맞는 거짓말을 안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엄마의 장례식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가 대중과 재판장에게 맞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그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다시, 교도소로 돌아와 교수형에 처하는 날을 기다리며 그는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창문 너머로 별을 보고, 바다냄새를 맡으며, 과거를 추억하며 백 년이라도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치 감옥에 있지만 그게 뭐 삶에 중요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다.
교도소로 신부가 찾아와 그를 교화시키려 한다. 그는 그 신부의 말이 귀찮기만 하다. 끈질기게 신부는 그에게 하나님을 말하는데, 그는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에게 신은 없다. 없는 신을 믿으라는 신부에게 화가 날 뿐이다.
그가 나가자 한숨 자고 나서, 별이 보이고 들판의 소리가 들리며, 밤냄새, 소금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여름의 평화가 밀물처럼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죽을 날을 받아놓은 한 남자가, 세상과 이별하면서 고통이 아니라 평화를 맛본다.
그는 자신의 처형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외롭지 않게 죽기를 바란다. 그들의 증오의 함성을 들으며 외롭지 않은 마지막을 바란다.
나와 세계가 무척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려면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내가 덜 외로워하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p136
이방인이 세상에 반항하는 방식
그의 어머니가 좀 더 살아서 장례식이 없었더라면, 그가 래몽이란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주말에 바닷가에 놀러 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살인이다. 그는 이 판결에도 상소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구나.... 그런 반응으로 받아들인다. 삶을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듯하다.
그는 세상에서 사는 삶에 그리 애착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회사 사장이 파리에 지사를 내고, 그리로 발령을 내준다는 데도 그는 거절한다. 딱히 파리라는 곳에 가서 산들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알제리 바닷가 해변이 좋고, 그곳에서 해수욕을 하고,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그런 평범한 삶이 자기에겐 괜찮다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성공, 열정, 더 나은 삶, 부자, 미래.... 이런 것에 그는 무덤덤하다.
그의 애인 마리가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사랑하지 않는 거 같다고 말한다. 마리가 나와 결혼하자고 할 때, 네가 결혼을 원한다면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의 말하는 방식은 정답지 않다. 내가 만약 애인에게 그런 식의 말을 듣는 다면, 당장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는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듣는 듯하다. 입에 발린 사랑의 말이 아니라, 그의 무심한 태도에서 나오는 진실한 모습을 본 듯하다. 그래서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상처받지 않고 결혼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이 세상의 상식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미사여구나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려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조금 변명하고, 그때 자신이 했던 살인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면, 사형까지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진실로 살인을 뉘우치지 않는데,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뉘우칠 수가 없었다. 그는 사실만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살인을 정말로 뉘우치고 회개한다고. 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는 사형장의 이슬이 된 것이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비유를 맞추며 살아야 되는데 그는 세상에 반항했다. 세상은 그런 그를 용서해 줄 수 없다. 다수와 결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 마치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고, 파렴치하고, 동물보다 못하고, 사탄적이고, 빨리 제거해 버려야 하는 무엇이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 내려왔지만, 이 세상의 법칙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거되었다.
그래도 그는 그의 방식대로 세상에 한껏 반항했다. 교수형에 처한 자신을 괴로워하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이별하는 시간에 평화를 받아들임으로 세상 사람들과 다른 태도를 취했다.
어떤 미련도 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모습으로 그는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어머니처럼 양로원에 들어가 자연사를 할 수 있고, 아랍인처럼 뜻하지 않게 죽임을 당하고, 뜨거운 태양에 못 이겨 방아쇠를 당겨서 처형을 당하는 죽음이 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30년을 더 산들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죽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방인에게 친절한 세상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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