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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뼛속깊이 기독교인으로 예전 같으면 이런 이슬람이 들어간 책은 제목조차 싫어했을 터였다.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가 아닌 종교도 존중하며 그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슬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도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손홍규 작가님의 글은 처음 읽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통해서 내뱉는 메시지가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이슬람 정육점 줄거리

 

고아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던 소년은 어느 날 늙은 터키인 하산에게 입양되어, 서울 가난한 달동네에 들어와 살게 된다. 소년은 이 소설의 화자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슬람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슬람 종교인인 하산 아저씨는 정육점을 한다. 가난한 동네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는 대부분 돼지고기다. 소고기는 일 년에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비싼 고기 이므로 대부분이 사가는 고기는 돼지고기다. 

 

정육점 고기써는 남자
정육점 고기 써는 남자

 

하산아저씨는 6.25 전쟁에 참전하고 어떤 이유에선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눌러앉아 살고 있다. 전쟁의 기억이 그를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만들어 그렇게 된 것 같다. 그의 기억이 많이 왜곡되고, 고통스러워도 하산아저씨는 묵묵히 일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고아원에서 소년을 입양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 당시 소년은 여러 고아원을 거치고 있었다. 고아원 원장이 자랑스러워하는 반지를 잃어버린 날, 모두를 의심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내가 그 반지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 와중에 하산이 와서 소년을 입양하고 그 고아원을 나오게 된다. 

 

소년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온통 거짓투성이다. 고아원원장은 늘 신뢰를 강조했는데, 그는 아이들을 한 번도 믿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거짓투성이의 악한 이들로 가득 찬 것이 세상이라고 마음속 곳곳에 새겨두었다.

 

하산이 허름한 달동네로 데리고 온 날부터, 소년이 하는 일이라곤 하산이 고기를 자르는 일을 보고 있거나, 안나 아줌마 가게에 가서 사람들을 보다가 안나 아줌마를 도와주면서 하루를 보낸다. 신문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잘라 스크랩을 하는 것이 하나의 취미이다.

 

가난한 동네에 또래 유정이가 친구가 되었다. 유정이는 말더듬이다. 아버지는 연탄장수이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유정이는 더듬거리며 말하면서 가장 많은 단어를 사용한다. 유정이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어느 날 유정의 엄마가 집을 나가고, 유정은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는다. 엄마가 오기만 기다리며 유정은 살아간다.

 

안나 아줌마는 가게 이름을 충남식당이라 지었다. 충남식당이 된 사연은 대단하지 않지만, 그녀의 우여곡절의 삶은 눈물겹다. 매일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어린 것들을 놔두고 도망치듯 나와서 사는 인생이다. 그녀는 날마다 얼마나 아이들이 보고 싶었을까.....  그런 마음을 가난한 사람들의 밥을 챙기며 위로받는다.

 

그녀의 다락방에 야모스 아저씨가 산다. 그는 그리스인으로 비행기를 모는 군인이었는데, 내전 당시에 잘못 오인해서 사촌들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자원해서 한국전에 참전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허풍쟁이인데, 가장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거둬서 밥을 주는 안나 아줌마는 얼마나 따뜻한 품을 지니고 있는가?

 

대머리아저씨가 나온다. 머리가 하나도 없는 할아버지다. 그는 전쟁을 통해 몇 년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참전을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그는 한국전의 모든 것을 암기해서 그것을 자기의 기억으로 만들고, 날마다 큰 소리로 전쟁가를 부른다. 정신이 돈 할아버지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친구 맹랑한 녀석은 대머리아저씨가 집을 비울 때, 그의 군복을 찾아내서 불에 태운다. 그의 거짓되고 고통스런 기억을 없애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의 한 인생이 불에 태워졌다. 이제 대머리 아저씨는 그 지독한 기억에서 자유로울까.

 

쌀집 둘째 딸은 사랑을 찾아 집을 가출했다. 하지만, 세상은 혹독하고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를 이해 못 하는 아버지는 딸의 뺨을 때리고, 딸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래도 그녀는 끝내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년은 오른쪽 쇄골 아래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상처는 왜 생겼는지, 언제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어떤 사정으로 난 그런 상처를 가지게 되었을까? 기억엔 없지만, 아마 무척 엄청난 일을 겪었을 거라고 몸이 말해주는 듯하다.

 

어느 날, 안나 아줌마는 금일 휴업을 선언한다. 그래도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오늘은 쉬겠다고 다짐하고 손님을 받지 않는다. 모든 테이블을 가운데로 모아놓고 그 위에 벌렁 누워서 쉰다. 그래도 그녀의 친한 이웃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야모스 아저씨는 물론, 소년, 대머리 아저씨, 노란 줄무늬 고양이.... 아무리 쉬고 싶어도 친구들에게 국밥은 내준다. 질 좋은 고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그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한다. 안나 아줌마는 홀로 나와 살지만, 외롭지 않다. 그녀는 배고픈 자들의 어머니다.

 

그리고, 어느 날, 충남식당에 어느 노인이 앉아서 조용히 술을 마신다. 노인이 나가면서 그가 죽었으니, 자식이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찾아와도 된다고 말해준다. 그는 안나 아줌마의 시아버지이다. 포학한 아들이 지난주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안나 아줌마는 이제 마음 한편이 자유롭다.

 

그녀는 달동네 이웃들과 소풍을 계획한다. 아는 사람의 동네에서 돼지를 한 마리 잡는 이벤트다. 트럭을 한 대 빌려서 모두 구겨타고, 드디어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에 다다랐다. 거기서 더 늙어 보이는 여자를 언니라고 부르며 안나 아줌마는 한참을 운다.

 

돼지가 죽을 때, 동네에 한바탕 소란이 나고 모두 신이 나고, 하산 아저씨는 그 좋은 칼솜씨로 돼지부위를 잘라서 아이스박스에 담는다. 솥을 걸고 돼지 국밥을 만들고, 모두 배부르게 먹은 하루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모두 도시가 아닌 아름다운 자연에서 하루를 지냈다. 그들에게 이런 날은 흔하지 않은 날이다.

 

하산 아저씨는 라마단 기간을 맞아 금식을 한다. 너무 노쇠한 몸으로 낮동안 금식을 하고, 저녁에만 아주 조금 음식을 먹는다. 그의 기력이 점점 쇠해지는데, 정육점 건물 주인이 세를 올린다고 한다. 지역 재개발 소식이 그곳까지 미쳐서 주인은 새로운 건물을 올리고, 정부에서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은 것이다.

 

하산 아저씨는 점점 몸이 나빠지더니 드디어 충남식당에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다. 소년은 그런 하산 아저씨를 찾아간다. 병원에서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중에, 하산 아저씨는 자기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한다. 소년은 이미 진즉부터 하산을 아버지라 생각했다. 의붓아버지, 정말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소년은 자신의 피에 의붓아버지 하산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산의 어깨에 자신과 똑같은 상처가 난 것을 보며, 우린 아마도 뭔가 깊은 인연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은 이 세상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상처 입은 영혼들....

 

 

상처를 지닌 여러 인물들이 나와 상식 밖의 말을 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외면받는 사람들이다. 다들 수군대고, 욕하고, 없어져야 할 인간들로 취급된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를 측은히 여긴다. 자신의 온기를 조금 내어주고, 왜 그가, 그녀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해 준다.

 

막연히 나와 다르다고, 비판하고 싫어했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진다. 기독교인 나는 불교인이나, 더더군다나 이슬람, 힌두교는 정말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생각했다. 나와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게이나 레즈비언은 전염병이라도 가진 사람들로 생각했다. 또한 고아와 이혼한 사람들은 말로는 측은히 여겨도 복도 지지리 없는 불행한 사람들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로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 하산아저씨는 고아원을 전전하는 한 영혼을 입양해서 사랑을 가르쳐줬다. 소년이 마침내 자기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했다. 그는 이슬람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신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그 신을 한 소년에게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고 해도, 나는 단 한 사람에게 나의 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사랑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하산은 이렇게 신에 대해 말한다.

 

신은 네 안에서 잔다.... 신을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다. 눈이 부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지.

 

그럼 어떻게 해야 눈이 부셔 일어날까요?

 

네 영혼을 닦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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