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책읽기

양귀자의 <모순> 줄거리

건강한 하늘시내 2023. 3. 6. 12:01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은 안진진이라는 25세 여성을 통해서 인생이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이야기한다. 한 여성이 자신의 인생에 온 생애를 바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모순> 줄거리

 

안진진은 이모부가 소개해준 회사에 들어가 일하고 있다. 이모부의 한마디가 이렇게 위력이 있는지 새삼 놀랍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회사라는 곳에 처음 들어갔다. 대학은 휴학을 반복하고 있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안진진의 가족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 안진모가 있다. 아빠는 어릴 때 집을 나가 가끔 오다가, 이젠 몇 년째 오지 않고 있다. 아마 어딘가에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해서 집안의 살림을 다 때려 부쉬고, 엄마도 때렸다. 우리 남매는 급하게 이모집으로 피신 가곤 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 때문에 일찌감치 생활의 전선에 나서야했다. 시장바닥에서 속옷과 양말을 팔면서 악다구니로 살아내고 있다. 모든 불행이란 불행은 비껴가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도 억척스럽게 살아서 이제 18평 작은 집을 장만했다.

 

안진모는 안진진의 남동생으로 조직의 보스가 되는게 꿈이다. 그는 허구한 날 알파치노가 나오는 (대부)를 보면서 폼을 연구하고 있다. 목소리를 내리 깔면서 보스의 말투를 흉내 내는 게 일과이다. 

 

안진진은 어느 날 아침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안진진은 어릴 때 부터 어떤 요구가 있으면 최선을 다했다.  중학교 때, 동생이 새운동화를 사달라고 할 때 두 달 집을 나와 돈을 벌어 동생과 어머니의 구두를 사 왔다. 물론 어머니에게 모진 수모를 당했다. 이렇게 진진은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두 번 가출을 해서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였다.

 

안진진은 억척스럽게 사는 엄마와 조직의 보스가 되는 것이 꿈인 철없는 동생과 셋이서 그럭저럭 살다가 이대로 살다 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인생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는 엄마와 똑같이 닮은 쌍둥이 이모가 있다. 이모는 엄마와 같은 날 결혼을 했다. 외할아버지가 한 날 태어났으니, 결혼도 같은 날 시켜야 되겠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 엄마와 같은 날 결혼한 이모! 하지만, 이모는 엄마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이모부는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빈틈이 없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데, 도시에 빌딩을 건축한다. 그는 아주 성실하고, 가족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이모네는 큰 집에서 부족함이 없다. 아빠가 술을 먹고 엄마와 살림살이를 두들겨 팰 때면, 엄마는 이모에게 연락해서 진진과 진모를 데려가게 했다. 

 

어릴적부터 진진은 이모와 자주 만났기에 이모가 내 엄마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훨씬 젊고 예쁘고 우아하다. 엄마처럼 그렇게 악을 쓰지도 않고, 부드럽고 친절하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는 이모는 엄마와 딴 세상의 삶이다.

 

진진은 거친 엄마 보다 이모를 더 사랑한다. 엄마와 너무 극명하게 다른 삶을 사는 이모를 좋아하고, 이모도 진진을 좋아한다. 이모의 딸과 아들은 미국에 유학 중이다. 철두철미한 이모부의 교육대로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이모는 자식이 있지만, 한 명도 곁에 없기에 쓸쓸하다. 가끔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조카 진진이가 각별하고 사랑스럽다.

 

진진은 엄마와 이모, 아빠와 이모부의 삶을 지척에서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삶이 제각각이고, 그냥 내버려 두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진진의 앞에 두 명의 남자가 있다. 진진은 자신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두 명이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도 그 두 명이 싫지 않다. 하지만, 결혼은 어느 한 명하고 해야 한다. 누구와 할까....?

 

김장우!  그는 마음이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형의 여행사를 도와주며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 형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고 가난하다. 어딘가 경계가 모호하고 흐릿하다.

 

나영규! 그는 유복하게 자라서 매사 자신감이 있는 직장인이다. 인생을 자신의 계획대로 끌고가려는 사람이다. 진진과 결혼을 생각하며 진진이 빨리 결혼을 허락해 주기 기다린다.

 

진진은 전혀 다른 두 명의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집전화에 의지해서 전화가 빨리 오는 사람과 약속을 잡는다. 두 사람 다 예의 있는 사람들이라 그녀가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면 다음을 기약한다.

 

김장우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한다. 그는 사진작가로 틈틈이 사진을 찍는 데, 우리들은 잘 알지 못하는 들꽃들을 주로 찍는다. 실꽃풀, 흰젖제비꽃, 큰들별꽃....

 

 

흰들꽃 야생화
야생화 흰 들꽃

 

 

" 푸른 잎사귀 속에 숨어서, 저토록 아련한 큰들별꽃들이, 깜박빰박 조용히 빛나고 있는 거야. 안진진. 나. 그냥 울어 버렸다. 너무 작아서... 아니, 저 홀로 숨어서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도 되는가 싶으니까 무지 눈물이 나대....."

 

이렇게 김장우는 세상에 작은 것들,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감동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나영규는 진진과 데이트를 할 때, 모든 데이트 코스를 미리 짠다. 그는 일분일초도 허투루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 어디로 드라이브를 가고, 어느 맛집에서 근사하게 식사를 하고, 그다음 카페는 분위기 있는 곳으로 갔다가, 영화시작 30분 전에 도착해서 미리 팝콘과 콜라를 사는 그런 사람이다.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90년대에 정말 어떻게 이런 계획표를 짜는지 그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영규는 이렇게 매사에 현실적이고 계획적이다. 이런 나영규가 안진진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하지만, 안진진은 감성적이고 착하기 그지없는 김장우에게 점점 빠져든다. 그래서 그의 집에 가서 상견례도 하게 된다. 

 

김장우의 형은 부모가 돌아가시고, 동생을 자식처럼 보살폈다. 그런 형을 김장우는 너무 사랑한다.  형의 여행사가 망하자 김장우는 모든 돈을 형에게 주고, 작은 아파트에서 같이 산다. 형네 집으로 진진은 꽃과 케이크를 사서 인사를 간다.

 

진진의 동생 진모는 몇 명의 똘마니를 데리고 보스의 흉내를 내다가, 진짜 보스가 되라는 여자친구 비둘기의 요구대로 더 진짜 보스가 되려고 한다. 어느 날 비둘기가 다른 보스에게로 날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격분해서 똘마니들과 비둘기의 새 남자 친구를 응징한다. 그리고 그는 감옥으로 들어간다.

 

이런 일로 진진은 마음이 어지러운데, 아빠가 돌아왔다. 근 몇 년을 소식도 없던 아빠가 어떻게 이 집을 찾아왔는지 모를 일이다. 아빠는 이제 다 늙은 모습으로 정신마저 오락가락한다. 그는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병이 들어 집으로 온 것이다.

 

엄마는 이런 아빠를 내칠 수 없어서 집에서 돌보는데, 아빠는 점점 치매가 악화되어 진진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돌본다.  젊은 날 폭력적인 성격파탄자 아빠가 이제 힘이 하나도 없는 노인이 되었다. 진진은 그런 아버지를 왠지 조금 이해한다.

 

진진은 이런 자신의 복잡하고 내놓기 싫은 가족사를 나영규에게 다 드러낸다. 

 

진진은 사랑을 거짓말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솔직한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에 끌리는 김장우에게는 자신의 부끄러운 가족사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영규에게는 솔직하게 속속들이 다 이야기한다. 진진은 나영규를 포기하고 김장우에게 가는 걸까?

 

이모가 죽었다. 세상에!!! 

 

그렇게 엄마와 대비되는 삶을 산 이모가 자살을 했다. 얼마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런가? 부유하고 악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 남편은 절대 한 눈을 팔지 않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아이들은 저마다 재능이 있어 모두가 부러워한다.

 

엄마가 질퍽한 자신의 삶을 비관해서 죽었다면 이해가 되지만, 이모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생의 끈을 놓아버리다니.....

 

삶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삶을 멀리서 엿볼 때와 직접 살아보는 것은 다를 것이다. 내가 그토록 동경해마지 않았던 삶을 산 이모가 사실은 불행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진진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나영규, 김장우.... 진진은 누구와 결혼을 했을까...? 

 

꽃다발을 들고있는 신부
꽃다발을 들고있는 신부

 

 

진진은 이모의 죽음을 보고 생각했다. 그토록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불행했고, 반대로 불행이란 불행은 모조리 끌고 살았던 엄마의 삶이 이모의 삶 보다 나았지 않았을까? 엄마의 불행처럼 보이는 일들이 어쩌면 삶을 지루하게 살지 않도록 해준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만 결정하면 될 터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완벽한 행복과 불행은 없으니까.

 

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했다. 이건 이모의 죽음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진진은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모를 죽음에까지 몰고 갔던 그 평온함이 어떤 것이지 알고 싶었나 보다. 지금까지 살아보지 않았던 삶을 결혼을 통해 살아보기로 했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양귀자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삶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양귀자 작가는 이 책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천천히 읽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필력이 좋기도 하지만, 안진진의 삶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1990년대에 결혼한 내가 진진의 삶을 보면서 많이 공감하고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결혼을 인생의 한 터닝포인트로 여기며 두 남자 중 한 남자를 고르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는 안진진이 김장우와 결혼할 줄 알았다. 매번 이모부의 철저한 삶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에 진진은 따뜻한 김장우를 선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안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했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세계를 선택했다. 낭만적이고 따뜻한 김장우 보다 계획적인 나영규를 선택한 것은 결혼은 현실을 살아가는 긴 세월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안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해서 행복했을까? 각자의 행복과 불행은 정말 모를 일이니까. 안진진이 나영규와 함께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았기를 바랄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