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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자기앞의생/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줄거리

건강한 하늘시내 2022. 11. 23. 16:59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 제목은 내게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에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이란 책을 끝낸 후라 자기 앞의 생이 마치 전생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기 앞의 생이란 내 앞에 펼쳐진 생이란 의미인 듯하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아자르가 쓴 책인데, 그는 로맹 가리와 같은 사람이다. 로맹 가리가 다른 예명으로 출판한 책인 셈이다. 여기에 이 책의 줄거리와 왜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출판했는지, 이 책을 읽고 느낀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자기 앞의 생 - 소설책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의 소설책

 

자기 앞의 생 줄거리

 

 

10살의 모모는  (모하메드를 줄여서 모모라고 불렀다) 로자 아줌마 집에서 산다. 로자 아줌마는 50살까지 엉덩이로 벌어먹고 살다가 더 이상 그것으로는 살 수 없어서, 창녀들이 낳은 아이를 맡아서 키워주면서 살고 있다. 창녀들도 모성애가 있는데, 너무 열악한 환경이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그런 아이를 맡아서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창녀의 아이는 아버지도 알 수 없고, 출생증명서도 제대로 갖추기 힘들다. 모모는 어느 창녀가 낳은 아이로 잠깐 봐달라고 한 것이 벌써 몇 년째 돈도 송금해오지 않지만, 그냥 같이 산다.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는 유일한 의지할 대상이다. 그녀가 이젠 다 늙어서 뚱뚱한 거구에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모모는 끝까지 로자 아줌마 곁에 있겠다고 생각한다.

 

로자 아줌마가 사는 아파트는 7층에 있다. 이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무조건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로자 아줌마는 이제 너무 늙고 병까지 있어서 7층을 오르내리기도 힘들다. 웬만한 심부름은 모모가 대신해준다. 

 

동네 하밀 할아버지는 가끔 들려서 인생 상담을 하곤 하는 사람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언제나 모모에게 친절하다. 그는 회교도 신자라서 모모에게 회교도에 대해서 말해주고, 언제나 그가 존경해마지않는 빅토르 위고의레미제라블 책을 가지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 이라는 뜻이다. 

 

같이 사는 모세라는 아이는 유태인 인듯하다. 그녀의 엄마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으니까. 모세는 이제 새로운 부모를 가지게 되었다. 그를 입양할 부모가 나타난 것이다. 모세는 그렇게 새로운 부모를 따라서 떠났다. 

 

점점 로자아줌마는 병색이 짙어지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정신줄을 놓을 때가 많다. 모모는 동네 의사 카츠 선생님께 달려가고 왕진을 와달라고 부탁한다. 카츠 선생님은 왕진을 와서 암은 아니라고 한다. 암이 아니라는 소식에 기뻐하지만, 로자는 온몸이 병 투성이다. 심장도 안 좋고, 치매가 왔다. 그녀는 하루에 여러 번 정신이 나간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다. 모모는 간간이 도둑질을 하고, 친구도 있고, 창녀들이 데려가고 싶어 하는 아이지만, 그녀에게 로자 아줌마는 유일한 피붙이 같은 존재다. 아줌마가 점점 정신을 잃고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모모는 우산에 파란 천을 붙이고 얼굴을 그리고 아르뒤뜨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아르뒤뜨를 가지고 거리로 나가서 우스운 공연을 하며 돈을 벌고, 잠잘 때는 같이 껴안고 잔다. 마치 아르뒤뜨가 친구라도 된 듯이 말이다.

 

어느 날 향이 너무 좋은 어느 여자를 보고 그녀 뒤를 따라가게 된다. 그녀는 나딘이라는 사람인데, 처음부터 모모에게 친절했다. 그녀가 일하는 곳까지 가게 된 모모는 그녀가 어느 영화의 음성 더빙을 하는 일을 보게 된다. 수도 없이 영화가 뒤로 간다. 다시 목소리를 입히기 위해서 영화를 뒤로 돌리는데, 그 모습이 신기하다.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로자 아줌마를 15살 예쁜 모습으로 돌려놓고 싶다.

 

로자 아줌마는 절대로 병원에 가서 죽는 일은 싫다고 말한다. 병원이란, 주삿바늘 하나만 들어가도 사람을 죽이지 않고 끝까지 고통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냥 집에서 죽겠다고 말한다. 카츠 선생님은 이젠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병원행 만큼은 절대 반대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끝까지 지켜주기로 약속한다.

 

로자 아줌마가 가끔 아랫층 지하로 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모가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는 로자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 큰 안락의자와 초와 비상식량이 있다. 그곳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다 올라오는 로자 아줌마에게 모모가 물었다. 로자 아줌마는 그곳이 피난처라고 말해주면서, 나치가 잡으러 오면 그곳에 숨으려고 미리 마련한 곳이라고 한다. 

 

사실, 로자는 젊어서 나치 수용소에 잡혀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유태인으로 히틀러를 제일 무서워하고, 나치 수용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가면, 나치가 자길 잡으러 왔다고 헛소리를 하면서 숨는다. 지하실은 그녀가 숨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그곳은 그녀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아래층에 롤라 아줌마가 사는데,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독특한 사람이다. 한 때 권투선수로 활약했는데, 여자가 되기 위해 가슴을 키우고, 여자로 살기 원하지만 아직 거기는 자르지 못했다. 그녀는 맘이 너무 착해서 로자 아줌마가 마트에 못 가자 대신 장을 봐주고 수시로 쓸 돈도 주고 간다. 언제나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위해 애쓴다. 이렇게 착한 사람을 왜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날, 어느 남자가 찾아와서 힌두교 아이를 찾는다. 그는 모모의 아빠로 모모의 엄마를 죽이고 정신병원에 10년 있다가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옛날 로자 아줌마가 적어준 종이를 가져오는데 날짜를 보니, 모모는 10살이 아니라 14살이다. 갑자기 4살이나 더 나이를 먹게 된 것이다. 그는 모모 엄마를 죽이려던 것이 아닌데 사고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심장병으로 그곳에서 죽는다. 모모는 그가 진짜 자신의 아빠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이가 이젠 14살인 것이다.

 

이제 로자 아줌마는 오줌도 싸고 똥도 싼다. 그래도 병원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로자 아줌마가 정신이 약간 돌아왔을 때, 아래층 사람들의 도움으로 1층까지 내려가게 되고,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지하실로 가게 된다. 모모는 이제 안심하라고, 이곳은 아무도 아줌마를 찾아내지 못하므로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한다고 한다.

 

로자 아줌마는 쇼파에 앉은 채로 오줌과 똥을 싸고 정신이 나간다. 이젠 아무리 앞에서 이것저것을 해봐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죽었다. 그녀 옆에서 모모는 잠을 청한다.  모모는 자신의 돈으로 향수를 사다가 뿌리고, 로자 아줌마의 얼굴에 화장을 해준다. 3주 정도가 지나자 자연의 순리대로 냄새가 밖에까지 나게되고 사람들이 그들을 발견하게 된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

 

 

로맹 가리는 프랑스에서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다. 그는 자기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이 많았다. 그의 작품이 로맹 가리라는 이름에 덧입혀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이야기되는 것이 싫어서 제2의 자신을 창조해낸다.

 

친척의 도움으로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책을 펴내고 두 번째 공쿠르 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공쿠르 상을 반납하려 하지만, 주최 측에서는 사람보다는 작품에 주는 상이라 거절할 수 없다는 대답을 받게 된다. 최초로 한 사람이 두 번이나 공쿠르 상을 받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가 죽기 전에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밝혀서 알려지게 되었다. 로맹 가리가 젊은 에밀 아자르를 표절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는 그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미소 지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이름으로 책을 쓰고서 66세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아마, 그는 생을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의 의지로 마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소설에서 나온 안락사니.... 이런 것은 먼 훗날의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의 하나인 프랑스에서 가장 못 사는 창녀촌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생의 대부분을 창녀로 살다가 후반부를 창녀들이 낳은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여자와 창녀의 아이가 서로를 애틋하게 챙기며 의리를 지키는 이야기다. 

 

어쩌면 세상에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들은 종교 간의 편견도 없고, 직업에 대한 멸시도 없다. 그냥 인간 자체를 측은히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 

 

7층에 사는데 층간소음에 대한 불평도 없다. 아이들이 얼마나 뛰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도 아래층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지낸다. 죽음을 앞둔 로자 아줌마를 다들 도와주려고 애쓴다. 똥을 싸면  같이 치우고, 먹을 것이 없으면 장을 봐준다. 

 

이 소설은 정말 지저분하고, 암울할 것만 같은 삶인데, 따뜻하다. 서로를 비판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삶이란 원래 그러려니 한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냥 하루를 산다. 그리 큰 꿈도 없다. 그러니 경쟁도 없다. 그냥 하루를 받아들이고 서로 돕고 사는 게 전부다. 모모가 끝까지 로자 아줌마 곁에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이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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