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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를 읽다


갑자기 가을비가 내린다. 부엌에서 어제 사온 시래깃국이 너무 맹맹하여 된장과 두부와 파를 넣고 다시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빗소리가 들린다. 창밖을 보니, 시커먼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시래깃국 맛을 보니, 너무 짜다. 된장을 너무 많이 넣었나 보다. 다시 작은 양파 두 개를 썰어서 넣었다. 이젠 좀 먹을만해지겠지.... 이것으로 점심준비는 끝이다.

어제 읽은 상실의 시대에 대해 뭔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책상에 앉았다. 읽은 책에 대해 몇 글자라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엔 내용도 저자도 까마득해진다. 그래서 이젠 책을 읽으면 뭐라도 써서 남기려 한다. 난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까?

가을비는 벌써 끝났다. 아마도 소나기였나 보다. 벌써 해가 나고 집안이 환해졌다. 전등을 다시 꺼야겠다. 햇빛에 비하면 전등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상실의 시대 줄거리와 결말


상실의 시대는 나라고 지칭하는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나오코, 미도리, 레이코 이 세 여자가 나온다. 여기 나오코라는 여자가 와타나베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나오코는 사실 와타나베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기즈키의 여자 친구였다. 이들은 고교시절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17세 되던 해에 어느 날 아주 평범한 날에 기즈키가 자살을 한다. 그날은 와타나베와 기즈키가 콜라 내기를 하면서 당구를 쳤던 날이다. 그날 저녁 기즈키는 아무 유서도 남기지 않고 차에서 자살을 했다. 이 사건이 와타나베와 나오코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만난다. 그녀는 와타나베와 걷자고 한다. 그들은 기즈키를 잃은 아픈 추억이 있으므로 같이 만나면서 위로받고, 사랑하게 된다. 나오코의 20살 생일날 그들은 뜨겁게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돌연 나오코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와타나베는 애타게 그녀를 찾고 한참 지난 후 편지가 온다. 나오코는 정신요양원에 있었다. 그녀는 기즈키의 자살과 언니의 자살까지 너무 충격을 받고 마음의 병을 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와타나베는 요양원을 방문한다. 너무 산골 깊숙한 곳에 위치해있다. 나름 시설도 깨끗하고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요양원이다. 이곳에서 나오코는 같은 룸메이트인 레이코와 의지하며 살고 있다. 와타나베는 레이코와도 친해져서 그녀의 사연을 들어준다. 젊은 날 한 때의 방심으로 모든 게 터져버렸다고 하는 그녀의 슬픈 사연을. 그녀는 피아노를 전공했고, 기타도 잘 치고 세련되었다. 레이코가 나오코와 같이 지내는 것은 잘 된 일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나아져서 자기와 같이 살기를 바란다. 그녀를 진심으로 일으켜 세우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돕기를 바란다.

어느 날 와타나베는 식당에서 미도리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와타나베와 연극사를 같이 수강하는 학생이다. 같이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어쩐지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친하게 지낸다. 미도리는 애인이 있는 상태다. 그녀는 활기차고 세련되고 거침이 없다. 그녀는 성적인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여자다. 솔직하게 그때그때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런 미도리는 연약한 나오코와 참으로 대비된다. 미도리는 말이 통하는 와타나베에게 마음이 가고 보수적인 전 애인과 헤어진다. 와타나베도 미도리의 아버지 병문안도 가고, 그녀의 집에 가서 같이 놀면서 미도리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나오코가 있다. 그는 아직 나오코를 사랑한다. 어쩌면 그에게 나오코는 연민이다. 나오코는 아픈 마음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여린 영혼이다. 그녀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온전히 사랑을 줄 수 없다. 이런 와타나베를 사랑하는 미도리는 항상 속이 상한다.

어느 날 나오코가 더 심해져서 전문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어 치료를 받게 된다는 레이코의 편지를 받는다. 와타나베는 그런 나오코가 걱정이 된다. 레이코는 나오코의 상황을 편지로 보내주고,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걱정하며 미도리와 갈등을 겪는다. 미도리는 항상 와타나베가 자신을 보지 않고 마음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는 것을 힘들어해서 헤어지려고 한다. 와타나베를 만나주지도 않고, 그를 잊어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미도리는 와타나베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사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나오코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와타나베는 너무 충격에 쌓여서 가방을 싸고 정처 없이 떠난다. 학교도, 아르바이트도 모두 내팽개치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닌다. 한 달 후에 그가 돌아왔을 때, 레이코에게 편지가 왔다.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그들은 나오코를 같이 추억하고 싶었다. 레이코는 나오코가 죽은 그 요양원에 홀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어 그곳을 나올 결심을 한 것이다. 레이코와 와타나베는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충분히 나오코를 추억하며 추모한다. 그녀는 기타를 치며 나오코가 좋아하던 노래를 50곡이나 부르고, 나오코가 쓸쓸히 떠난 것을 애도한다. 그들은 마지막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낸다. 아마도 레이코를 나오코의 현신이라 생각한 듯하다. 깨끗이 불태우고 그녀는 떠난다.

와타나베는 레이코를 배웅하고 미도리에게 전화를 건다. 나는 너를 만나고 싶다. 너와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너를 만나는 것이다. 간절히 간절히 말한다. 미도리가 어디냐고 묻자, 와타나베는 여기가 어디인가?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상실의 시대와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젊은 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내용이라 더 흥미 있게 읽었다. 그 시대 젊은 일본 청년들의 연애관이 아주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소설은 순수 연애 소설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해준다. 어린 시절의 상실은 한 인생에게 너무 큰 충격이다. 그가 친한 친구를 잃어버리면서 방황하는 모습이 주된 이야기 이면서, 그를 둘러싼 여자들의 상실로 인한 아픔이 많이 나와 있다.

이 소설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는지를 잘 그렸다. 누구나 상실을 겪고 산다. 한 남자의 상실의 시대를 소설로 엿보면서 우리의 상실도 떠오르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상실하며 살았을까? 아마도 살면서 많은 상실의 아픔을 겪었으리라. 부모를, 친구를, 동료를.... 우리 모두는 서로 측은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힘은 또다시 남아있는 자를 사랑하며 얻게 된다. 와타나베가 전화로 미도리를 애타게 부른 것처럼.


사막 같은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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