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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는 시몬 드 보브아르의 일기형식의 소설이다. 보브아르는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녀는 위기의 여자에서 결혼과 여성의 실존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위기의 여자> 줄거리와 보부아르의 여성의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말해보겠다.

 

 

홀로있는 여자
소파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

 

위기의 여자 줄거리

 

어느 날 남편 모리스는 애인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모니크는 남편의 사랑에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모리스는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항상 다정하고 상냥한 남편, 그 검은 눈으로 그윽이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했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모리스는 의사일을 하면서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그가 늦게 들어오는 것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새삼 다른 여자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모니크는 그들의 결혼생활이 완벽하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부부라고 은근히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편이 고백을 했다. 자신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노엘리라는 여자 변호사다. 아주 육감적이고, 출세지향적인 말하자면 속물인 여자다. 그런 여자에게 끌려서 남편이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다. 왜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직접 내게 말하는 것일까? 모니크는 이해할 수 없다.

 

모리스는 아내를 속이는 것도 지쳤고, 또한 일말의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터이다. 아내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않고 이중생활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옳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니크는 당황했다. 아니, 아직까지 남편은 정숙하고 교양있는 자신과의 결혼생활을 만족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이제 그동안 경멸해 마지않던 부류의 여자와 정사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하는가 말이다. 그는 출세라든가, 야망 이런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남편 모리스가 온전히 자신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노엘리와 함께하는 것을 생각만해도끔찍하다. 그녀는 친구를 찾아가 상담한다. 친구는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잘 유지한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라며, 남자를 너무 몰아붙이면 그냥 달아나니, 좀 느슨하게 기다리라고 한다. 그와 헤어질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모니크는 그가 없는 삶은 상상이 안간다. 자신은 그를 떠나서는 독립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와 당연히 죽을 때까지 삶을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헌신한 삶이다. 

 

친구의 충고처럼 그녀는 그를 압박하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노엘리와 가까와지고 모니크는 멀어져 가는 남편을 느낀다.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 현실은 전혀 아니다. 

 

모니크는 할 수 있는 생각을 다 해봤다. 도대체 언제부터 남편의 사랑이 떠나버렸는지, 나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왜 더이상 남편이 날 사랑하지 않는지.... 날마다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답이 없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해도 뻔한 이야기 뿐이다. 두 딸에게 이야기를 해봐도 결국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신의 결혼생활을 다 봐왔으므로 뭐가 문제였는지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도 뭐라 답해줄 수 없다. 

 

남편 모리스에게 더이상 날 사랑하지 않냐고 묻는다. 모리스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난 이해하기 힘들다. 모리스가 노엘리를 사랑한다면, 이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소설 내내 남편 모리스는 아내 모니크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두 여자를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동안 같이 산 정과 아이들의 엄마로 가족관계를 깨고 싶지는 않다는 말인가?

 

모니크는 이제 점점 절망한다. 그녀는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의욕이 없다. 그는 점점 야유어 가고 볼품없어진다. 이렇게 망가져가는 아내를 안타까워하며 모리스 자신도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는 잠시 따로 나가 살겠다고 한다. 그녀는 그가 나가서 따로 산다면, 그건 얼마 후 그녀를 영원히 떠나고 노엘리에게 간다는 뜻이다. 

 

이제 그녀에게 아무도 없다. 큰 딸은 결혼했고, 작은 딸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홀로 남은 중년의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니크는 우울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느낀다. 오직 자신만이 다시 일어나 미래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부아르의 여성의 결혼에 대해

 

여기 모니크는 자신의 인생에 결혼이 가장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었다. 두 딸을 양육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일이 그녀의 전부였다. 그녀는 젊은 날,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음에도 결혼을 선택하고 지금껏 행복하게 살았다. 때때로 싸우기도 했지만, 그런 건 여느 부부나 다 있는 일이다. 나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꽤 괜찮은 부부였다고 생각했다. 결혼생활은 남편의 외도 고백 전까지 괜찮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하지만, 남편이 여자가 있다는 고백을 한 이후로 그녀는 온갖 심리적 고통을 받는다. 아직,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배신감이 들지만, 그를 보낼수가 없는 것이다. 그와의 생활을 빼면 그녀에게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의아한 것이, 한 번도 이혼하자 라는 말이 안나온 것이다. 만약, 나라면, 배신의 분노에싸여 이혼하자 라는 말이 먼저 나올 법도 한데, 한 번도 이혼에 관한 말이 안 나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유연애관을 가지고 있어서, 결혼 중에 외도를 해도 저렇게 난리를 치지 않고 말할 수 있는가 싶다. 사실, 소설의 중간 이후 까지도 그렇게 크게 싸우지 않았다. 남자는 거의 집으로 오는 데, 그 여자를 만나러 가거나 그 여자네 집에서 자고 올 경우, 또 같이 휴가를 보내는 일을 자신의 아내에게 다 말한다. 그들은 어떤 정신으로 그런 대화가 가능한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장 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실제로 계약결혼을 몇십년 했기에 이런 소설이 나왔는가?  바람피우는 상대와 한집에 같이 살면서,이성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신기하다. 그들과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또한, 그가 내연녀와 청산을 하면 모니크는 다시 남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소설 속에서 모니크는 남편이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자신 곁으로 오기를 바랐다. 이 부분에서 난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외도를 한 것은 팩트이고, 자신을 배신했는데, 어떻게 예전처럼 사랑의 관계로 살 수 있는지....

 

프랑스는 배우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라서 그런가?  배우자의 사적 자유를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 결혼이라는 관계에서 어느 한 쪽이 신뢰를 저버리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너무 상처가 크기 때문에 서로가 함께 있기 어렵다.

 

모니크는 이제 남편없이 한 사람으로 존재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삶에서 오로지 홀로 서야 한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결혼에 올인할 때 얼마나 그것이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자신이 결혼을 유지하려 해도, 상대가 다른 마음이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여성이 결혼에 목매기 보다 자신을 세우는 일을 해야한다. 설사 결혼을 했다 해도 배우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경제력과 독립심을 키워야 할 것이다. 믿었던 남편이 어느 날 마음이 떠나버려도 자신은 이 땅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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